지난겨울은 미국 동북부에서 30년 만에 가장 추웠다. 그렇다고 매년 하던 일을 미룰 수는 없었다. 집 앞 작은 정원의 장미 나무를 가꾸는 일이다. 추운 날씨에 하기가 힘들기도 하고, 늦가을에 미리 해둬도 좋지만 장미 나무가 추위를 이겨내기를 기다렸다가 봄이 오기 직전에 하는 것이 오래된 습관이다. 계절과 관계없이 정원을 가꿀 때마다 할아버지가 떠오른다. 정원 가꾸기에 대해 내가 아는 거의 모든 것은 할아버지에게 배웠기 때문이다. 그러니 꽃이며 나무를 가꾸거나 낙엽을 치울 때마다 할아버지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영어에서는 할아버지를 3인칭으로 말할 때 성(family name)을 붙인다. 그래서 나의 할아버지는 ‘파우저 할아버지’(Grandpa Fouser)다. 내 어릴 때 사업을 하던 아버지의 출장길주즐사
엔 어머니가 동행하곤 했다. 그때면 나와 동생은 할머니·할아버지 댁에 가 있었다. 체구가 작은 할머니는 알뜰하면서도 엄격한 집안의 ‘여왕’이셨다. 살림은 물론 요리도 잘하셨고 성격도 외향적이어서 친구분들을 자주 초대하셨다. 그때마다 식탁 한가운데 직접 꽃꽂이를 해두시던 것도 기억난다. 어머니는 비교적 자유로운 성격이어서 이런 할머니께 적응하기가 쉽잖았다. 윤재수
아버지 조언에 따라 할머니가 하시는 말씀엔 무조건 ‘예스’라고 답했다. 할아버지는 달랐다. 1895년생으로 오하이오주립대학에서 원예학 석사학위를 받은, 당시 미국에서는 매우 드문 학력을 갖고 계셨다. 작은방 하나를 아늑한 서재로 꾸밀 만큼 독서를 좋아하셨고, 학구적이셨다. 책상 위에는 항상 공립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이 쌓여 있었다. 할머니 말씀엔 늘 ‘예스’바다이야기게임사이트
라고 답하는 비서실장 같았다. 조용한 성격이셨는데 늘 바쁘셨다. 겨울철 외에는 거의 매일 정원을 가꾸셨다. 키우는 꽃의 종류가 매우 다양했다. 겨울이나 비 오는 날, 정원 일을 못 할 때는 지하실에서 나무로 뭔가를 만드는 걸 좋아하셨다. 정원이나 지하실에서 뭔가를 하실 때마다 따라다닌 덕분에 할머니보다는 할아버지와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할머니는 거의이젠텍 주식
명령조로 말씀하셨는데, 할아버지는 늘 내게 뭔가를 질문하며 부드럽게 말씀을 건네셨다. 꽃과 나무, 허브 종류, 새 이름들도 거의 다 할아버지께 배웠다. 나중에 학교 선생님께서 어디에서 배웠는지 신기해하실 정도로 제법 자세히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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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세 살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할아버지를 나의 노년 모델로 삼게 되었고, 이를 나 혼자 ‘파우저 할아버지 프로그램’이라고 이름 지었다. 프로그램의 첫 번째는 건강이다. 할아버지께서는 거의 매일 정원을 가꾸고, 손으로 뭔가를 만드시면서 육체 건강을 관리하시고, 독서를 통해 뇌 건강을 관리하셨다. 그렇지만 점심때는 언제나 맥주 한 캔을 드셨다. 명절이 아니면 술은 그게 전부였다. 책을 보실 때면 파이프 담배를 물고 계셨다. 서재에 가득했던 파이프 담배 냄새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할머니가 해주시는 대로 매우 규칙적으로 식사하셨고, 음식에 대해서는 이렇다저렇다 말씀이 거의 없으셨다. 인스턴트 음식은 거의 드시지 않았다. 주무시고 일어나는 것도 규칙적이었다. 90대 초반까지 정원 일을 하실 만큼 건강하셨다. 1년 정도 편찮으시더니 아흔넷에 돌아가셨다. ‘파우저 할아버지 프로그램’의 건강 비결은 몸과 뇌를 잘 쓰면서 규칙적일 것, 너무 무리하지 않는 생활 습관을 유지할 것이다. 그다음은 자기 위치를 알고, 남을 존중하는 것이다. 명령형을 좋아하시는 할머니는 늘 요구가 많으셨다. 20세기 초에 태어나 자란 여성 중에는 운전을 평생 배우지 못한 분이 많다. 할머니도 그랬다. 할아버지는 평생 할머니의 운전기사였다. 할머니가 어디든 가자고 하면 할아버지는 항상 흔쾌히 ‘오케이’ 하셨다. 그 시대 미국의 일반적인 가정처럼 할아버지께서도 집안의 재산을 다 관리하셨는데, 할머니가 사고 싶다고 하면 뭐든 쾌히 사주셨다. 할머니가 워낙 알뜰하셔서 이견이 없기도 하셨겠지만, 두 분 모두 서로를 존중하며 사셨다. 끝으로는, 지적 관심을 갖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규칙적으로 생활하셨지만 화석화하지 않았고 옛날에 멈춰 살지 않으셨다. 항상 신문과 텔레비전 뉴스를 보고 세상 돌아가는 것을 파악했다. 읽는 책도 가리지 않고 다양했다. 도서관에서 새로 구입한 책을 늘 대출해서 읽으셨다. 정기구독하는 원예 잡지를 통해 알게 된 새로운 장미 품종을 정원에 심곤 하셨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할아버지는 1920년대 미국에서 이른바 화이트칼라(중산층)에 진입했다가 1930년 대공황 때 어려움을 겪으셨다. 1940년대 이후 지인 회사의 회계 담당자로 일하다 은퇴하셨다. 20세기 미국의 대표적인, 다시 말해 아주 평범하고 일반적인 인생을 사신 분이다. 그런 분이 삶의 지혜로 가득한 ‘파우저 할아버지 프로그램’을 내게 남겨주셨다. 건강과 존중 그리고 지적 관심이라고 했지만, 이 세 가지를 관통하는 것은 차분한 인생관이 아닐까. 내가 떠올리는 할아버지의 인생은 화려한 단거리 레이스가 아니라, 성실하고 묵묵한 마라톤이었다. 할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정원에서 함께 대화를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 할아버지의 모습으로부터 나이를 먹어가는 오늘의 내가 소중한 지혜를 얻고 있다.



로버트 파우저 언어학자, 前 서울대 교수